(작성: 2018.03.27)
염증이 생기면 주로 진물이나 고름 등이 생기는데, 이런 것들을 분해시켜 없애기 위해 쓰는 약이 소염효소제이다. 주로 기관지염, 감기, 편도염, 관절염, 안과질환 등에 많이 쓰이고 있다. 국내에서 가장 많이 쓰이는 소염효소제는 바리다제(스트렙토키나제, 스트렙토도르나제)로서 한국인 두 명 중 한명은 이 약을 복용했다고 한다. 유아부터 성인, 노인까지 온갖 질병에 약방에 감초처럼 끼어 들어가는 약이다.
바리다제는 2004년부터 폭발적으로 사용이 늘어나면서 2016년까지 약 6,000억 원에 상당하는 판매를 이뤄냈다. 바리다제 이전에는 세라치오펩티다제, 리소짐이라는 이름의 소염효소제들이 성수기를 누렸으나 일본에서 효과가 별로 없으니 이만 나가달라는 요청을 받고 퇴출되면서 한국에서도 자연스레 허가가 취소되었다. 물론 지금도 브로멜라인이나 트립신이라는 이름의 유사 약들이 존재하긴 하지만 바리다제에 비한다면 그 존재감은 참으로 미미한 상황이다.
그.런.데! 한국인 두 명 중 한 명이 열심히 먹어왔던 바리다제가 별반 근거가 없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식품의약품안전처는 작년 11월 이 사실을 실토하며 이제라도 근거 자료를 만들어보라는 지시를 제약사에게 내렸고 제약사들은 임상시험을 준비하겠다며 허둥지둥 서두르는 모양새다.
과연 이 임상시험이 바리다제의 효과를 증명해낼 수 있을까?에 대한 고민을 넘어 걱정스럽기 그지없다. 효과가 없을까 걱정이 아니라 효과가 있을까 두렵다. 이 왠 망언인가 싶지만 만약 바리다제의 효과가 증명된다면 그건 한국 보건의료당국의 망신이자 국내 제약업계, 임상시험기관의 신뢰를 국제적으로 무너뜨리는 일이 되고야 말 것이다.
그 이유는 이렇다. 전 세계 유수 대학에서 약학 교과서로 쓰이고 있는 책에서는 이미 1975년 ‘바리다제의 가치가 확립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경구용으로 섭취 시 바리다제는 위산에 의해 불활성화 되어 체내에 흡수되지 않기 때문이다. 미국에서는 1981년 ‘바리다제는 효과가 없고 향후에도 효과를 입증할 가능성이 없으므로’ 퇴출되었다. 식약처가 허가를 줄 때 근거로 삼았던 독일에서도 사라졌다는데 언제, 왜 사라졌는지 식약처는 모르겠다고 하지만 상식선에서 충분히 예상가능한 상황이다. 모두에게 상식인 명제를 왜 굳이 시간과 돈을 들여 증명하길 요구하는지 식약처와 제약사의 속내가 자못 궁금하긴 하다.
국내 의약품 사용 양상을 보았을 때 바리다제가 사라지고 나면 또 다른 소염효소제들이 그 자리를 파고 들어갈 것이다. 소염효소제를 이처럼 무차별적으로 남발하는 국가는 한국뿐이다. 소염효소제 뿐 아니라 치매 예방약이라는 탈을 쓴 뇌기능개선제, 혈액순환제, 간질환용제 등등 별다른 효과도 없이, 그저 국민들의 주머니만 털어가는 이런 종류의 약들은 이제 그만, 안녕을 고해야 할 때가 왔다.